BirthDB · 날짜 기반 엔터테인먼트 아카이브FRI · 26.10.16 · KST
BirthDB· THE DATE ARCHIVE
Section탄생상징
Page신숙주 탄생 정보와 업적
Historical Figure

신숙주

申叔舟
조선 전기문신유학자국어학자외교관화가
시대조선 전기
직군문신 · 유학자 · 국어학자 · 외교관 · 화가
양력 생일1417년 8월 11일
향년57세
Birth Color
골드 어스 (Gold Earth)
#DE9D69
Second Color
오디색 (桑の実色)
#55295B
인생 여정 수 · Life Path Number
5
삶의 큰 방향을 상징하는 수
탄생수 · Birth Number
5
그 날짜가 품은 수
Summary

인물 요약

조선전기 병조판서, 대사성,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전문사전 학술 콘텐츠

Birth Profile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같은 생일 보기
Lunar

음력 생일

정본 기록에 남은 음력 생일입니다.

음력 생일6월 20일
Birth Symbols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Celestial

하늘

별자리사자자리
별자리 주간사자자리Ⅲ: 리더십의 주간
탄생성태양
탄생신아폴론
Terrestrial

땅

탄생화빨강 무늬제라늄
꽃말개성 있는 애정 · 진실한 우정 · 붉은 활력 · 따뜻한 안정
탄생목미루나무
탄생석페리도트
Spirit

그 외

탄생주사이드카
탄생색 (영문판)골드 어스 (Gold Earth)
탄생색 (일어판)오디색 (桑の実色)
Signature Spectrum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BIRTHDAY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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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역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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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Record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생애와 주요업적

신숙주의 성장 과정이나 교유관계, 사승관계 등에 대해서는 특별히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다는 정도만 전하고 있다. 그는 1438년(세종 20)에 진사시 초시와 복시에서 모두 장원을 차지하였고, 곧바로 생원시에도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439년(세종 21) 국왕 친시 문과에서 3등으로 합격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 제수받은 관직은 전농시직장이었는데, 2년 후인 1441년(세종23)에는 집현전부수찬으로 임명되었다. 집현전은 국가의 제반 제도 정비 및 학술 연구를 전담하기 위한 기구로서, 세종(世宗)이 특별히 설치한 곳이었다. 당시 25살에 불과하던 신숙주가 집현전 관원이 된 것은 그만큼 국왕의 신임과 기대가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숙주는 집현전에서 이후 정치적으로 또 학술적으로도 깊은 인연을 맺게 되는 당대 최고 인재들과 교유하게 되었는데, 성삼문(成三問), 이개(李塏),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이석형(李石亨), 정인지(鄭麟趾), 최항(崔恒), 강희안(姜希顔) 등이 그들이다. 이후 신숙주는 사헌부의 장령과 집의, 집현전직제학 등 주요한 요직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집현전 학자로 재직하던 시절 신숙주의 가장 큰 업적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에 참가한 것이었다. 특히 그는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성삼문과 함께 당시 요동으로 유배를 와 있던 명나라의 학자인 황찬(黃瓚)에게 열 차례 이상 찾아가 자문을 구하였는데, 당시 황찬은 신숙주의 이해력이 비상함을 높이 평가하였다. 세종의 관심과 신숙주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의 노력은 1446년(세종 28) 훈민정음을 반포하는데 이르러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훈민정음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있는 문자이다. 또한 훈민정음 제작 과정에서 축적된 언어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동국정운(東國正韻)』 이란 음운서를 1447년(세종 29년) 간행하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사후 평가와 가문 후손들의 생애

신숙주는 생전에는 세조로부터 ‘당태종에게는 위징이란 충신이 있다면 나에게는 신숙주가 있다’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고, 시호 또한 문충(文忠)으로 내려 받아 공이 많고 충성스러운 신하로 평가받았다. 오늘날 신숙주를 절의를 버린 기회주의자로 기억하게 된 것은 조선 후기 사육신 등이 충신으로 현창된 이후의 일이고, 거기에 더하여 각종 소설 및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그러한 이미지가 더욱 부각되기도 하였다. 신숙주는 모두 여덟 명의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인 신주(申澍)는 일찍 죽었고, 차남인 신면(申㴐)은 관직이 함길도관찰사에 이르렀으나 이시애의 난의 와중에 피살되었다. 신정과 신준은 성종 즉위과정에서 신숙주와 함께 좌리공신에 책봉되기도 하였고, 신준의 경우 이후 박원종(朴元宗) 등과 함께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참여하여 정국 3등 공신에 책봉되기도 하였다. 신숙주의 손자들 중에도 고위 관직을 역임한 이들이 있었는데, 맏아들 신주의 아들인 신종호(申從濩)는 문과 장원 출신으로 관직이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신면의 아들 신용개(申用漑)도 문과 급제 출신으로 중종대 관직이 좌의정에 이르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Reading · 자료와 맥락

기록을 읽는 기준

출생 정보는 기록에 확인된 정밀도로 표시합니다. 양력과 음력을 구분하고, 날짜가 완전하게 확인된 경우에만 탄생 상징을 함께 살펴봅니다.

인물 요약과 활동 기록의 출처는 각 문단 및 출처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