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요약
조선전기 병조판서, 대사성,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음력 생일
정본 기록에 남은 음력 생일입니다.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골드 어스 Gold Earth
오디색 桑の実色
생일 인물
생일 역사 인물
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생애와 주요업적
신숙주의 성장 과정이나 교유관계, 사승관계 등에 대해서는 특별히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다는 정도만 전하고 있다. 그는 1438년(세종 20)에 진사시 초시와 복시에서 모두 장원을 차지하였고, 곧바로 생원시에도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439년(세종 21) 국왕 친시 문과에서 3등으로 합격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 제수받은 관직은 전농시직장이었는데, 2년 후인 1441년(세종23)에는 집현전부수찬으로 임명되었다. 집현전은 국가의 제반 제도 정비 및 학술 연구를 전담하기 위한 기구로서, 세종(世宗)이 특별히 설치한 곳이었다. 당시 25살에 불과하던 신숙주가 집현전 관원이 된 것은 그만큼 국왕의 신임과 기대가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숙주는 집현전에서 이후 정치적으로 또 학술적으로도 깊은 인연을 맺게 되는 당대 최고 인재들과 교유하게 되었는데, 성삼문(成三問), 이개(李塏),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이석형(李石亨), 정인지(鄭麟趾), 최항(崔恒), 강희안(姜希顔) 등이 그들이다. 이후 신숙주는 사헌부의 장령과 집의, 집현전직제학 등 주요한 요직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집현전 학자로 재직하던 시절 신숙주의 가장 큰 업적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에 참가한 것이었다. 특히 그는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성삼문과 함께 당시 요동으로 유배를 와 있던 명나라의 학자인 황찬(黃瓚)에게 열 차례 이상 찾아가 자문을 구하였는데, 당시 황찬은 신숙주의 이해력이 비상함을 높이 평가하였다. 세종의 관심과 신숙주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의 노력은 1446년(세종 28) 훈민정음을 반포하는데 이르러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훈민정음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있는 문자이다. 또한 훈민정음 제작 과정에서 축적된 언어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동국정운(東國正韻)』 이란 음운서를 1447년(세종 29년) 간행하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사후 평가와 가문 후손들의 생애
신숙주는 생전에는 세조로부터 ‘당태종에게는 위징이란 충신이 있다면 나에게는 신숙주가 있다’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고, 시호 또한 문충(文忠)으로 내려 받아 공이 많고 충성스러운 신하로 평가받았다. 오늘날 신숙주를 절의를 버린 기회주의자로 기억하게 된 것은 조선 후기 사육신 등이 충신으로 현창된 이후의 일이고, 거기에 더하여 각종 소설 및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그러한 이미지가 더욱 부각되기도 하였다. 신숙주는 모두 여덟 명의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인 신주(申澍)는 일찍 죽었고, 차남인 신면(申㴐)은 관직이 함길도관찰사에 이르렀으나 이시애의 난의 와중에 피살되었다. 신정과 신준은 성종 즉위과정에서 신숙주와 함께 좌리공신에 책봉되기도 하였고, 신준의 경우 이후 박원종(朴元宗) 등과 함께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참여하여 정국 3등 공신에 책봉되기도 하였다. 신숙주의 손자들 중에도 고위 관직을 역임한 이들이 있었는데, 맏아들 신주의 아들인 신종호(申從濩)는 문과 장원 출신으로 관직이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신면의 아들 신용개(申用漑)도 문과 급제 출신으로 중종대 관직이 좌의정에 이르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