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요약
조선 전기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음력 생일
정본 기록에 남은 음력 생일입니다.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리시다 Reseda
파피 레드 ポピーレッド, Poppy Red
생일 인물
생일 역사 인물
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생애와 주요 업적
황희는 1376년(우왕 2년) 음서로 녹사 직을 제수 받으면서 14살의 나이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383년(우왕 9년)과 1385년(우왕 11년)에는 각각 사마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389년(창왕 1년) 9월 유원(柳源)과 이종학(李種學)이 주관한 문과 시험에서 김여지(金汝知) 등과 함께 합격하였다. 합격 다음해에 성균관 학록에 제수되었다. 조선 건국 이후 태조 대에 장무습유직에 제수되었고, 1398년(태조 7년) 세자우정자가 되었다가 선원전 건축을 반대한 일로 경원(慶源)의 교수관으로 좌천되었다. 정종이 즉위한 이후 다시 서울에 올라와 우보궐로 승진하였다. 1405년(태종 5년) 박석명의 후임으로 지신사로 전격 발탁되었는데, 지신사는 후에 도승지와 같은 왕의 비서실장 직이었다. 세자 교체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 태종은 당시 영의정이던 유정현(柳廷顯)과 좌의정 박은(朴訔)에게 2년 전 황희가 한 발언을 언급하며 황희에게 죄가 있다는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1426년(세종8년)에는 우의정에 오르면서 정승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고, 다음해인 1427년(세종 9년)에는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황희와 함께 맹사성(孟思誠) 역시 우의정에 제수되었는데, 이후 이 두 재상은 약 10여 년을 함께 재상의 자리에서 세종을 보필하였다. 좌의정에 제수되자마자 황희는 사위인 서달(徐達)이 저지른 일에 휘말리게 되어 좌의정에서 파직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세종은 다음 달 다시 황희와 맹사성을 좌의정과 우의정에 다시 제수하였다. 좌의정에 복귀하자마자 황희는 어머니 상을 당하게 되었다. 세종은 황희를 기복시켜 계속 좌의정으로 업무를 보게 하였으나 황희는 3년상은 자식의 당연한 도리이므로 본인이 자식된 도리를 다 할 수 있도록 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렇게 몇 차례 기복의 명과 사양하기를 반복하여, 결국 황희는 좌의정 업무에 복귀하게 되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