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요약
조선전기 「자리도」의, 「초충도」의, 「노안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리비에라 Riviera
흑자 黒紫
생일 인물
생일 역사 인물
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개요
신사임당(申師任堂)은 조선 중기의 여성 화가요 문사였으며,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어머니로 유명하다. 화가로서 이름이 높았는데 특히 포도와 풀벌레를 잘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사임당(師任堂)이라는 당호는 ‘태임(太任)을 본받는다.’ 하는 뜻인데, 태임은 현숙한 부인의 전형으로 이름난 중국 고대 주(周) 문왕(文王)의 어머니를 가리킨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생애와 예술
율곡 이이는 어머니인 신사임당에 대해, ‘천성이 온화하고 얌전하였으며 지조가 정결하고 거동이 조용하였으며 일을 처리하는 데 편안하고 자상스러웠으며, 말이 적고 행실을 삼가고 또 겸손하였다.’ 하고 기록하였다. 또한 아버지인 신명화가 딸을 매우 아꼈다고 기록하였다. 신사임당이 결혼할 때 아버지인 신명화는 사위가 될 이원수에게, ‘다른 딸을 시집을 가도 서운하지 않더니 그대의 처만은 내 곁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을 정도이다. 그래서 그런지 신사임당은 결혼 후 곧바로 서울로 가지 않았고 2년 뒤인 갑신년에 서울에 왔다고 한다. 신사임당은 강릉에서의 생활을 무척 사랑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율곡 이이의 기록에 따르면 고향을 그리워하며 밤중에 조용해지면 울기도 하고 새벽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신사임당에 대한 가장 상세한 기록은 아들인 이이가 남긴 ‘돌아가신 어머니의 행장[先妣行狀]’일 것이다. 거기에 신사임당이 강릉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지은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머리 하연 어머니를 임영(臨瀛)에 두고 / 장안을 향하여 홀로 가는 이 마음 / 고개 돌려 북촌을 바라보노니 / 흰 구름 날아 내리는 저녁 산만 푸르네.’ 신사임당은 어릴 때부터 경전을 읽었고, 글을 잘 지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 신사임당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도 어릴 때 삼강행실을 읽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집안의 전통에 따라 문인으로서의 교양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사임당은 그림에도 뛰어났다. 『패관잡기(稗官雜記)』는 중종 말에 어숙권(魚叔權)이 편집한 것으로, 그림에 대한 신사임당의 명성을 알려주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패관잡기』 2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산수화에는 별좌(別坐) 김장(金璋)과 사인(士人) 이난수(李蘭秀)의 아내 신씨(申氏)와 학생(學生) 안찬(安瓉)이 있고, 영모(翎毛 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를 그린 잡화(雜畵)에는 종실(宗室) 두성령(杜城令)이 있으며, 풀벌레 그림에는 정랑 채무일(蔡無逸)이 있고, 묵죽(墨竹 먹으로 그린 대)에는 현감 신잠(申潛)이 있는데, 이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저명(著名)한 사람들이다.’ 이난수는 신사임당의 남편 이원수의 다른 이름이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