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요약
조선시대 『청허당집』, 『선교결』, 『심법요초』 등을 저술한 승려. 승군장(僧軍將).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위스풀 모브 Wistful Mauve
실버 그린 シルバーグリーン, Silver Green
생일 인물
생일 역사 인물
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개관
청허 휴정(淸虛休靜)은 조선중기에 활동한 불교 승려이다. 명종대 승과에 합격하여 선교양종판사에 제수되었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승병을 일으켜 승병장으로 크게 활약하였다. 조선후기 불교교단 최대 계파인 청허계(淸虛系) 법맥의 시원이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활동과 업적 : 승과 합격, 그리고 승병장
1552년(명종 7)에는 승과(僧科)에 합격하여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를 겸하게 되었다. 이 시기 서산의 승과 합격은 조선시대 불교정책에서 눈에 띄는 사건이다. 선교 양종이 혁파되고 승과가 실시되지 않고 있던 당시 상황에서 1550년(명종 5) 문정왕후 등에 의해 일시적으로 승과가 부활하고 양종이 복구되었는데, 이 때 승과에 합격한 이들은 주요 사찰의 주지나 승직을 역임하고 이후의 불교계를 주도하게 된다. 승과 부활 후 식년에 해당하는 1552년(명종 7) 승과에 합격하여 이후 교종판사와 선종판사의 양종 판사직을 겸하고 선종 본사였던 봉은사의 주지를 맡게 되는 인물이 바로 휴정인 것이다. 이후 휴정은 대선(大選), 주지(住持), 전법(傳法), 교종판사, 선종판사 등의 직위를 지내다가 1557년(명종 12) 어느 날, “내가 출가한 본래 뜻이 어찌 이런 것들에 있겠는가!”라고 탄식하며 승직을 모두 그만두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숨어 살았다. 이어 휴정은 당시 72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할 것을 약속하고 팔도십육종선교도총섭(八道十六宗禪敎都摠攝)의 벼슬을 받는다. 군대가 안성에 진을 쳤을 무렵 휴정은 심신의 노쇠함이 군대의 왕성한 기세를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물러날 것을 결심하였다. 휴정은 특히 시에 능한 승려로 알려져 있었으며 저술로는 문집 『청허당집(淸虛堂集)』을 비롯하여 『선가귀감(禪家龜鑑)』, 『선교석(禪敎釋)』, 『선교결(禪敎訣)』, 『설선의(說禪儀)』, 『회심곡(回心曲)』 등이 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법맥의 계승 : 문도의 양성과 청허계의 대두
휴정은 최고의 승직인 양종판사와 팔도도총섭을 역임하였을 뿐 아니라 선조에게 최고의 존칭까지 하사받아 당시 교단에서 높은 위상을 가졌고 사회에서도 큰 명성을 떨쳤다. 때문에 그 문도도 전국적으로 매우 많았는데, 비문에 의하면 제자가 천여 명에 이름난 이가 칠십여 명이라고 하였다. 사명유정이나 뇌묵처영, 의엄(義嚴) 등의 승병장들이 휴정의 제자였을 뿐 아니라 언기, 원준(圓俊), 원철 등 수많은 문도들이 전국적으로 활동하며 이후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휴정은 선, 교, 염불의 종합적 수행방향을 설정하는데 이는 경절문(徑截門), 원돈문(圓頓門), 염불문(念佛門)의 삼문으로 제시되어 그 문도들에게 계승되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