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thDB · 날짜 기반 엔터테인먼트 아카이브FRI · 26.10.16 · KST
BirthDB· THE DATE ARCHIVE
Section탄생상징
Page고려 공민왕 탄생 정보와 업적
Historical Figure

고려 공민왕

恭愍王
고려국왕
시대고려
직군국왕
양력 생일1330년 5월 31일
향년44세
Birth Color
그래스쇼퍼 (Grasshopper)
#7C8851
Second Color
연분홍 (薄紅)
#F0908D
인생 여정 수 · Life Path Number
7
삶의 큰 방향을 상징하는 수
탄생수 · Birth Number
7
그 날짜가 품은 수
Summary

인물 요약

고려 후기 제31대 국왕.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전문사전 학술 콘텐츠

Birth Profile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같은 생일 보기
Lunar

음력 생일

정본 기록에 남은 음력 생일입니다.

음력 생일5월 6일
Birth Symbols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Celestial

하늘

별자리쌍둥이자리
별자리 주간쌍둥이자리Ⅰ: 자유의 주간
탄생성수성
탄생신헤르메스
Terrestrial

땅

탄생화무릇
꽃말강한 자제력 · 인내 · 실연(이면의 성숙)
탄생목사시나무
탄생석에메랄드
Spirit

그 외

탄생주크림 드 민트 그린 프라페
탄생색 (영문판)그래스쇼퍼 (Grasshopper)
탄생색 (일어판)연분홍 (薄紅)
Signature Spectrum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BIRTHDAY PEOPLE

생일 인물

BIRTHDAY HISTORICAL FIGURES

생일 역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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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Record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개요

고려의 31대 왕인 공민왕은 1351년(공민왕 즉위년)에 즉위해 1374년(공민왕 23)에 시해당하기까지 23년간 재위했다. 그가 재위한 시기는 대외적으로 몽골(원)의 쇠퇴가 가시화하고 명이 중국대륙을 장악해갔던 시기이다. 대내적으로는 100여년 이상 지속되었던 몽골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고려의 정치·사회적 갈등과 혼란, 국왕 위상의 약화가 극대화하는 한편으로 이를 개혁하고자 하는 요구들이 생겨나고 있던 시기였다. 몽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대내적 정치 개혁을 이루고자 했던 공민왕의 노력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몽골과의 관계 청산에는 성공하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재위 전반기의 활동 - 원년, 5년 개혁

대내외적으로 혼란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즉위한 공민왕은 재위기간 동안 수차례의 개혁을 단행했다. 우선 그는 즉위 직후 충정왕대 권력층을 제거하는 한편으로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1352년(공민왕 1) 2월에는 정방을 혁파하고 문무의 인사를 전리사(典理司)와 군부사(軍簿司)로 돌렸으며, 국왕권 강화와 정치기강 확립을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1352년(공민왕 1) 정월에는 몽골식 머리모양인 변발을 하고 그들의 옷인 호복을 입던 관습을 폐기하기도 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신돈의 등용 - 배경과 결과

1356년(공민왕 5)의 ‘반원개혁’을 통해 고려-몽골 관계가 단절되지는 않았지만, 이 관계는 상당부분 변화하여 고려전기의 형식적 사대관계로 회귀한 듯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359년(공민왕 8)에 발발한 제1차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은 공민왕 5년 개혁의 성과를 상당부분 후퇴시켰다. 홍건적의 침입에 직면해 고려는 1361년(공민왕 10)에 다시 정동행성 관원을 두며 몽골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했다. 그러나 몽골은 고려에 침입한 홍건적에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1361년(공민왕 10) 10월에 홍건적이 2차로 침입해 오자, 11월에 공민왕은 복주(福州)로 파천했고, 개경은 함락되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몽골(원), 명의 교체

1368년(공민왕 17) 9월에 몽골의 수도인 대도가 명의 군대에 의해 함락되고 몽골 황제가 막북으로 도망갔다는 소식이 고려에 전해졌다. 이어 1369년(공민왕 18) 4월에는 명 황제가 자신이 오랑캐인 몽골을 몰아내었으니 명에 조공하라는 내용을 담은 친서를 보내왔다. 이에 공민왕은 5월에 몽골의 지정연호 사용을 중지하고 6월에 관제를 개편한 후 다음해인 1370년(공민왕 19)에 명의 홍무연호 사용을 선포함으로써 100여 년간 지속되었던 몽골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이때를 즈음하여, 공민왕은 2차례에 걸쳐 동녕부(東寧府) 정벌을 단행했다. 이는 당시 기철의 아들이자 몽골 평장사였던 기새인테무르(奇賽因帖木兒)가 몽골의 유민을 모아 동녕부 지역에 있으면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고려를 침입했던 것에 대한 응징이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재위 후반기의 문제점

공민왕은 그의 재위기간 동안 몽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몽골과의 관계를 통해 축적되었던 고려의 정치·사회적 폐단들을 개혁하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경주했고,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재위 후반부 행적들은 부정적으로 평가되거나, 이어지는 고려 말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정쟁의 요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이에 어머니인 명덕태후를 비롯한 대다수 신료들은 이를 중단할 것을 요청했으나 공민왕은 이를 강행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다음으로, 자제위(子弟衛)와 관련된 공민왕의 음행 문제이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Reading · 자료와 맥락

기록을 읽는 기준

출생 정보는 기록에 확인된 정밀도로 표시합니다. 양력과 음력을 구분하고, 날짜가 완전하게 확인된 경우에만 탄생 상징을 함께 살펴봅니다.

인물 요약과 활동 기록의 출처는 각 문단 및 출처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