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요약
조선 후기에, 과학사상가로서 『담헌서』, 『의산문답』, 「연기」 등을 저술하였으며, 연행사의 일원으로 중국의 학자 및 서양의 선교사들과 교유하면서 서양문물을 접하고 영향을 받은 학자.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칼라 그린 Calla Green
샤르트뢰즈 옐로 シャルトルーズイエロー, Chartreuse Yellow
생일 인물
생일 역사 인물
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머리말 - 공평무사한 눈으로 다른 사상의 장점을 두루 받아들인다.
홍대용은 서인-노론-낙론 계열이고, 흔히 북학파 혹은 이용후생학파의 선구로 불려진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범주화하기보다는 북학론을 사상적 지향으로 삼았다고 하는 정도가 홍대용의 사유체계를 설명하는 데는 적절할 것이다. 그만큼 홍대용의 사유체계는 독창적이다. 원래 북학이라는 용어는 박지원(朴趾源)과 박제가(朴齊家)에서 연유하며 귀속된다고 볼 수 있고, 실제로 북학파와 차별화되는 홍대용의 면모가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의산문답(醫山問答)」에서 청나라의 문명을 허학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북학론을 사상적 지향으로 삼으면서도 북학파와는 다른 홍대용만의 독특한 학문체계와 사상적 전망을 살펴보는 것이 홍대용을 정확하게 올바르게 이해하는 태도일 것이다. 공평무사한 눈으로 다른 사상의 장점을 두루 받아들이는 개방적 학문관, 근대적 인간관을 바탕으로 한 자연관·사회관, 과학기술의 탐구 정신 등을 볼 때 북학파가 청나라의 선진기술 도입을 가장 중시했던 것에 비해 홍대용은 궁극적으로 평등사회로의 변혁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홍대용의 글은 오늘날 내·외집 14권 2책의 『담헌서(湛軒書)』로 남아 있다. 『을병연행록(乙丙燕行錄)』을 제외한 홍대용의 현존 저작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의 학문과 사상의 전개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중국 여행의 결과물인 『담헌연기(湛軒燕記)』와 『을병연행록』, 홍대용의 철학을 집대성한 「의산문답(醫山問答)」, 그의 경세론을 종합하여 제시한 「임하경륜(林下經綸)」, 서양 과학의 근본이 정밀한 수학과 정교한 관측에 근거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쓴 수학서 『주해수용(籌解需用)』, 과학적 사고의 실험적 결과물인 혼천의와 자명종, 그리고 사설천문대 농수각(籠水閣) 등이 조선시대의 가장 뛰어난 과학사상가 홍대용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홍대용의 독창적인 사유 체계
홍대용은 정주학, 양명학, 서학, 불교, 도교, 제자백가(장자와 묵자)가 모두 진리를 구현하고 있다는 이해와 천문학, 수학, 병학 등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 위에 연행이라는 외부적 자극을 더함으로써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유체계를 확립하였다. 인간과 자연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유방식을 「의산문답」으로 종합하였고, 조선을 개혁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경세론은 「임하경륜」으로 정리하였다. 그는 학문하는 사람들이 공자와 주자의 참된 뜻을 잃어버렸다고 당시 조선의 학문과 사상계를 평가하였다. 여기에 홍대용의 과학기술 탐구 정신이 더해져서 시야가 우주로 확대되면 지구중심설을 부정하게 된다. 홍대용은 이상과 같은 사유체계를 바탕으로 「임하경륜」에서는 조선의 사회경제적, 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이면서 홍대용의 사유체계가 잘 드러나는 부분은 신분제와 교육제도이다. 「임하경륜」과 같은 경세론이 저술된 데에는 홍대용의 ‘경세제민’에 대한 인식이 밑받침되어 있었다. 홍대용 학문과 사상의 전개과정은 연행을 기준으로 연행 이전과 연행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