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요약
조선 후기에, 정조가 발표한 서얼허통절목으로 인해 규장각 검서관직을 역임하였으며, 『북학의』, 『정유집』, 『정유시고』 등을 저술한 학자.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제스터 레드 Jester Red
차콜 그레이 チャコールグレイ, Charcoal Gray
생일 인물
생일 역사 인물
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머리말 - 선입견에 얽매이지 말고 세상의 비난을 두려워 말라!
박제가는 홍대용(洪大容), 박지원(朴趾源)과 함께 대표적인 북학파로 잘 알려져 있다. 홍대용이 자연과학적 소양으로, 박지원이 문사적 기질로 자신들의 학문과 사상의 기본 논리를 만들어 나갔다면 박제가는 경세론가로서 그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세계관 혹은 문화의 개조를 지향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들은 공통의 가치와 지향을 갖고 있었다. 북학론으로 대표되는 박제가 경세론의 내용은 크게 가난의 구제와 습속의 개혁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난의 구제를 위한 각종 경제 정책을 제시하고, 고루한 습속의 개혁을 위해 진보적인 사회사상을 개진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그의 저서 북학의에 정리되어 있다. 박제가는 4차례의 연행을 통해서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청나라가 대부분의 조선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상속의 청과는 괴리가 큼을 알고 오랑캐라는 선입견을 걷어내기 위해 애썼지만 그들은 나를 믿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북학의를 중심으로 살펴본 박제가의 경세론 -경세제민과 이용후생
박제가는 평소 학문은 경세제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용하고 후생함에 하나라도 빠짐이 있다면 위로 정덕을 해친다.” 라고 하여 삶의 안정 없이 도덕은 존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풀어서 다시 설명하면 이용은 빠르게 생산하는 것을 말하고, 후생은 의복과 식량이 넉넉한 것을 뜻한다. 그는 ‘경세제민’을 목표로 하고 ‘이용후생’을 기반논리로 삼아 백성들의 생활수준을 향상하기 위한 정책론을 펼쳤다. 박제가가 북학론을 중심으로 한 경세론을 펼치게 되기까지 첫째로 영향을 끼친 역사적 인물은 최치원(崔致遠)과 조헌(趙憲)이었다. 최치원과 조헌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그들이 직접 견문한 사실을 바탕으로 현실을 개혁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박제가는 자신의 개혁안의 역사적 연원을 최치원과 조헌에 두고 있음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교유의 폭을 확장한 이후에 그의 사상과 학문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에는 우선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유금, 서상수, 이희경, 이서구 등 백탑파 일원들이 있다. 이처럼 박제가는 역사 속, 혹은 동시대 학자들의 영향을 받으며 자신만의 독자적 사유 체계를 확립해나갔다. 박제가의 경세론은 크게 경제사상과 사회사상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박제가는 수레를 이용한 국내 상업의 발전뿐만이 아니라 외국과의 통상을 주장하였는데 특히 해로무역의 육성을 강조하였다. 박제가는 규장각 검서관직에 있으면서 정조에게 자신의 경세론을 밝힐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로써 볼 때 박제가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것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박제가 사상이 후대에 끼친 영향
초정 친필본, 삼한총서 본 등 20여 종 이상의 『북학의』 사본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당시 『북학의』를 읽은 사람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박제가의 『북학의』와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그 내용을 볼 때 대동소이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박지원은 『북학의』 서문을 써주면서 나의 일기(『열하일기』)와 조금도 어긋나는 것이 없어 마치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 같았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동시대 혹은 후대 관료들의 정책제안이나 주장 등에서 북학의의 주장과 유사한 내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박제가와 함께 규장각 관원으로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다산 정약용(丁若鏞)도 이용후생의 사상을 정립하는 데 박제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박제가가 영평현령으로 재직시 종두법을 시행한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가 하면, 『경세유표(經世遺表)』에서는 자신이 『북학의』를 읽어보았는데 보통 사람은 추측하지 못할 탁견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박제가의 사상은 18세기 후반 이후 조선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하는 많은 논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