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요약
조선 후기에,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였으며, 실학 사상의 집대성자이자 개혁사상가로 평가되는 학자.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음력 생일
정본 기록에 남은 음력 생일입니다.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펠드스파 Feldspar
생일 인물
생일 역사 인물
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머리말 - ‘육경사서’로써 자신을 닦고, ‘일표이서’로써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다.
정약용은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를 모두 겸비하여 실학을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된다. 일찍이 성호학풍을 접하여 제도개혁론으로서 경세치용의 실학방법과 서학지식을 습득하였다. 또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와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읽고 이용후생학의 영향도 받았다. 그밖에 양명학, 고증학, 서학 등을 폭넓게 수용하여 유교경전해석에 창의적으로 활용하였다. 18년간의 유배기간을 자신의 학문을 연마하는 계기로 삼아 육경사서에 대한 연구와 일표이서 즉,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의 경세론 등 500여 권의 대저술을 남겼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정약용의 학문 체계 - 경학과 경세론
정약용은 ‘육경사서로써 자신을 닦고 일표이서로써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니 본말을 갖춘 것’이라고 자신의 학문에 대해 자평하였다. 그는 육경사서에 대한 연구로 경학체계를 세웠고, 일표이서의 저술을 통해 경세론을 제시하였다. 그의 경학체계는 정밀한 고증과 창의적 사유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경전을 해석할 때 반드시 경전에 근거하였다. 육경과 사서는 그 본래의 뜻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옳고 그름과 잘잘못을 반드시 경전에 의거해서 결단하면 확신하고 통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경전해석의 방식은 창의적 사유로 연결되어 독자적인 해석을 낳았다. 정약용이 처음으로 경전을 해석한 저술이었는데 주자의 성리학적 해석을 벗어나 『중용』 전반을 독자적으로 새롭게 해석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정조는 ‘특이하다’, ‘견해가 명확하고 공정하다’ 라고 하며 정약용의 답안을 첫째로 삼았다. 정약용의 경세론은 경세치용학과 이용후생학의 결합으로서의 경세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1817년(56세)에 『경세유표』를 시작으로 1818년(57세)에는 『목민심서』를, 해배 후 1819년(58세)에는 『흠흠신서』를 저술하기에 이르렀다. 낡은 우리나라를 새롭게 해보려는 생각에서 『경세유표』를 지었다고 한 그는 특히 토지개혁문제에 관심이 컸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