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요약
고려후기 목화 종자를 도입하고 재배하여 전국에 보급한 문신. 학자.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탄생색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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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커스 Crocus
버건디 バーガンディー, Burgundy
생일 인물
생일 역사 인물
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개요
그는 중국에서 목화씨를 들여와 국내에서 최초로 재배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서는 그의 생애와 행적, 특히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목화씨를 들여와 재배하는 데에 성공하게 된 사정을 추적해보고, 그에 대한 후세의 평가를 살펴보겠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과거에 급제하기까지
문익점의 과거급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등과록전편(登科錄前編)』에는 그가 신미년에 출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1331년(충혜왕 원년)이 된다. 그의 증손인 문치창(文致昌)이 지은 『사실본기(事實本記)』 등을 모아 남평 문씨(南平 文氏) 문중에서 1819년(순조 19)에 편찬한 『삼우당실기(三憂堂實記)』에 실린 「가전(家傳)」에서도 이를 따랐다. 그러나 『태조실록』에 실린 그의 졸기에는 1398년(태조 7) 당시 그의 나이가 70세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는 1329년(충숙왕 16)에 태어난 것이 된다. 문익점은 진주목(晋州牧) 강성현(江城縣), 지금의 경상남도 산청(山淸) 단성면에서 출생하였다. 『삼우당실기』에는 문익점이 문극겸의 8대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문익점은 가업을 이어 독서를 하였다고 한다. 『삼우당실기』에 수록된 「가전」에 따르면 문익점은 11세인 충숙왕 복위 8년(1339)에 가정(稼亭) 이곡(李穀)에게서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고려에 머물렀던 것은 이후 2년 남짓한 기간에 머물렀으므로, 문익점이 이곡에게서 학문을 배웠다는 기록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문익점은 32세가 되던 해인 1360년(공민왕 9) 문과에서 병과(丙科) 제4인, 즉 33인 중 7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하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어지러운 정세와 관직생활
문익점의 관직생활에 대해서 『태조실록』에 실린 그의 졸기에는 “공민왕 경자년에 과거에 올라 김해부사록(金海府司錄)에 임명되었으며, 계묘년에 순유박사(諄諭博士)에서 좌정언(左正言)에 승진되었다”고 전한다. 문익점이 최초로 수여받은 관직인 사록은 지방관청의 7품직이다. 순유박사는 성균관(成均館)의 교수직으로 관품은 종7품이며, 좌정언은 고려시대 중앙의 최고 관부였던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에서 국왕의 명령을 심의하고 왕의 잘잘못을 논하는 낭사(郎舍)의 종6품 간관(諫官)이다. 고려 시대의 과거 급제자는 대개 지방의 관원으로 발령받았다가 중앙 관원으로 임명받곤 하였다. 문익점이 과거에 급제한 해는 바로 홍건적의 두 차례 침입 사이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이른바 덕흥군(德興君) 옹립사건, 혹은 공민왕 폐위사건이 그것으로, 이는 문익점이 중국에 사신으로 파견된 상황과 밀접히 연관되므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공민왕 폐위사건과 중국 사행
공민왕 폐위사건에 대해서 『고려사』 덕흥군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기철(奇轍)이 처형을 당하자 기황후는 공민왕에게 앙심을 품었다. 마침 고려 사람 최유(崔濡)가 원나라에 있다가 불량한 무리들과 함께 황후를 꼬드겨 공민왕을 모함하여 폐위시키고 타스테무르[塔思帖木兒]를 왕으로, 기삼보노(奇三寶奴)를 원자(元子)로 옹립하려고 모의하고, 원나라에 있는 모든 고려 사람들에게 거짓 관직을 주었다. 『태조실록』에 실린 문익점의 졸기에 따르면 이 무렵 문익점은 좌정언(左正言)으로서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계품사 이공수를 수행하여 원에 파견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문익점이 중국에 파견되었던 시점으로 보아 그의 임무가 공민왕 폐위사건과 관련이 된 것임은 분명하다. 이때 원 조정에서는 고려의 사신들에게 높은 관직을 내려주며 회유하였는데, 문익점도 이때 덕흥군 측으로부터 관직을 받았다고 한다. 이로써 이공수를 비롯한 고려 사신들도 귀환하게 되었고, 문익점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목면의 전래와 보급
그런데 『삼우당실기』에는 문익점이 원에 머물던 시절에 대해 다른 기록을 전한다. 문익점이 덕흥군 편에 가담하기를 거부하다가 교지(交趾), 즉 지금의 운남(雲南) 일대로 귀양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중국 강남(江南) 지역에서 목화씨를 얻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후대에 미화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 문익점이 덕흥군 정권이 내려준 관직을 받아들였다고 한 데에서 보이듯이, 최소한 덕흥군 편에 가담하기를 거부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점은 그가 귀국 후에도 문제가 되어 공민왕대에는 더 이상 관직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던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셋째, 그 무렵 목면이 중국의 강남지역에서 주로 재배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화북 지역에서도 목면의 종자를 구할 가능성은 충분했다는 점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문익점이 목화씨를 붓뚜껍 속에 넣어 숨겨가지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태조실록』의 기록에는 그가 목화씨를 “주머니에 넣어서” 가지고 왔다고 한다. 목화씨 도입에 얽힌 이 일화 역시 후대에 첨가된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문익점은 귀국 후 원나라에서 덕흥군 편에 선 전력이 문제가 되어 중앙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1364년(공민왕 13) 그는 고향인 진주로 내려가 목면 재배를 시도해보게 되었다. 해마다 더 심어서 정미년(1368년) 봄에 이르러서는 그 종자를 나누어 마을에 주면서 권장하여 심어 기르게 하였는데, 문익점 자신이 심은 것은 모두 꽃이 피지 않았다. 중국[胡]의 중 홍원(弘願)이 정천익의 집에 이르러 목면을 보고는 너무 기뻐 울면서 말하기를, ‘오늘날 다시 본토(本土)의 물건을 볼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정천익이 그 집 여종에게 가르쳐서 베를 짜서 1필을 만드니, 이웃 마을에서 전하여 서로 배워 알아서 한 고을에 보급되고, 10년이 되지 않아서 또 한 나라에 보급되었다.” 여기서 목화 재배에 큰 공을 세운 것으로 등장하는 정천익은 문익점의 두 번째 부인의 아버지, 즉 문익점의 장인이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목화씨는 문익점 - 후세의 평가
문익점은 왕조교체기의 격동 속에서 정치적으로는 중앙에서 물러나게 되었지만, 사후에는 대단한 영예를 얻게 되었다. 또한 그에 대한 평가는 시대가 흘러갈수록 더욱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우선 국가에 의한 포상을 살펴보면, 그가 돌아간 직후 조정에서는 그에게 참지의정부사·예문관제학 ·동지춘추관사(參知議政府事·藝文館提學·同知春秋館事)를 증직하고 강성군(江城君)에 봉하였다. 또한 4년 후인 1401년(태종 원년)에는 그의 아들 문중용(文中庸)을 사헌감찰(司憲監察)로 임명하였다. 또한 1456년(세조 2년)에 이르러서는 양성지(梁誠之)의 건의에 따라 문익점의 사우(祠宇)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세월이 흘러 정조 때에는 문익점을 배향한 도천서원(道川書院)에 사액(賜額)하고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문익점과 관련된 서원으로는 도천서원 외에도 전라남도 장흥의 강성서원(江城書院)이 있다. 이곳은 원래 문익점의 9세손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의병 활동을 하여 명망이 높았던 문위세(文緯世, 1534~1600)를 제향하기 위해 1644년(인조 22)에 세운 사우였다. 그런데 1732년(영조 9)에 이르러 문익점이 추가로 제향되었고, 1785년(정조 9)에 사액서원으로 지정되었다. 나아가 고종 때에는 문익점을 문묘에 배향하자는 논의가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유생(儒生) 홍재성(洪在誠) 등이 상소를 올려 이색(李穡)과 더불어 문익점을 문묘에 합사할 것을 청했던 것이다. 비록 국왕의 보류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문익점이 고려 말 유학의 대가였던 이색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크게 현창되었음을 보여준다. 문익점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매우 높았다. “이것(목면)이 나라 안에 널리, 가득히 퍼져 유행하게 된 것은 진실로 그 공이 오곡육재(五穀六財)와 같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