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thDB · 날짜 기반 엔터테인먼트 아카이브FRI · 26.10.16 · KST
BirthDB· THE DATE ARCHIVE
Section탄생상징
Page김대건 탄생 정보와 업적
Historical Figure

김대건

金大建
조선 후기성직자
시대조선 후기
직군성직자
양력 생일1821년 8월 21일
향년25세
Birth Color
스파이시 오렌지 (Spicy Orange)
#DD523F
Second Color
육계색 (肉桂色)
#DD7A56
인생 여정 수 · Life Path Number
5
삶의 큰 방향을 상징하는 수
탄생수 · Birth Number
5
그 날짜가 품은 수
Summary

인물 요약

1846년 병오박해 때 서울 새남터에서 처형된 신부로 한국인 최초의 사제.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전문사전 학술 콘텐츠

Birth Profile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같은 생일 보기
Birth Symbols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Celestial

하늘

별자리사자자리
별자리 주간사자-처녀자리: 드러냄의 주간
탄생성태양
탄생신아폴론
Terrestrial

땅

탄생화짚신나물
꽃말감사의 마음 · 조용한 치유 · 끈기 있는 다정함 · 따뜻한 보살핌
탄생목삼나무
탄생석페리도트
Spirit

그 외

탄생주사이드카
탄생색 (영문판)스파이시 오렌지 (Spicy Orange)
탄생색 (일어판)육계색 (肉桂色)
Signature Spectrum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BIRTHDAY PEOPLE

생일 인물

BIRTHDAY HISTORICAL FIGURES

생일 역사 인물

Explore

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Record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조선 최초의 신부, 김대건

김대건이 살았던 19세기 전반기는 대내적으로는 서학(西學) 내지 천주교 신앙 등 각종 ‘사학(邪學)’이 성행하여 성리학적 질서에 균열이 심화되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이양선이 조선 연안까지 출몰하면서 문호개방이나 통상을 요구하는 등 서세동점(西勢東漸)이 가속화되는 시기였다. 조선 연해에 출몰했던 이양선을 파견한 국가 가운데 조선 천주교회와 간접적 관련을 맺고 있었던 나라는 프랑스였다. 김대건이 마카오에서 프랑스 신부에게 수업을 받고 있었던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에는 프랑스인 신부인 앵베르(范世亨)·앵베르(范世亨)·샤스탕(鄭牙各伯)이 사형에 처해졌으며, 그런 가운데 조선의 천주교인들 사이에서는 선교사의 영입을 위해 비밀스러운 노력들이 전개되었다. 김대건이 바로 조선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고, 선교사 영입과 전교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김대건의 생애

김대건은 충청남도 당진군의 내포지방 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金濟俊, 이냐시오)과 어머니 고씨(우르술라)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한국천주교회가 탄생된 지 얼마 안 되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의 집안에서 제일 처음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은 그의 종조부인 김종현(金淙鉉)이었다.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순교한 김대건의 아버지 김제준의 진술에 따르면, 자신의 큰아버지 김종현의 가르침을 받고 천주교에 입교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 김종현의 둘째 동생인 김한현(金漢鉉, 안드레아)도 맏형 김종현이 교리를 배운 뒤 형제들이 그 뒤를 따랐다고 진술하였다. 김대건의 증조부 김진후(金震厚)를 비롯하여 조부인 김택현(金澤鉉), 종조부 김종한(金宗漢, 안드레아) 등의 일가가 모두 김종현을 통해 입교하였다. 이렇게 김대건의 집안이 일찍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내포의 사도로 유명한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 곤자가)이 가까이 살면서 전도하였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이존창의 딸 멜라니아와 김택현이 혼인을 하면서 신앙 전통이 김제준, 김대건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김대건의 부친 김제준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신앙생활을 하지 않다가 15~16년이 더 지나서야 정하상(丁夏祥, 바오로)의 인도로 다시 천주교를 봉행하게 되었다. 솔뫼에서 태어난 김대건은 이후 아버지 김제준을 따라 서울 청파로 이주하였다가 용인의 한덕동을 거쳐 남곡리 골배마을(南谷里) 로 이주해 살았다. 모방 신부가 교우촌 순방차 나섰다가 김제준의 집을 방문하고 그 아들 재복(곧 김대건)을 본 뒤 제자로 삼고자 하여 데리고 갔으며, 김제준은 그 해 또 한 번 서울로 가서 아들을 만나 보았다고 한다. 당시 신학생으로 선발된 소년 중에서는 최양업(崔良業, 토마스)이 가장 먼저인 1836년 2월 6일에, 이어 3월 14일에 최방제(崔方濟, 프란치스코 사베리오)가, 그리고 김대건이 가장 늦은 7월 11일에 서울의 모방 신부 집으로 도착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김대건 사후의 추모

새남터에서 순교한 김대건의 시신은 안성 미리내로 옮겨져 안장되었으며, 1928년 안성 김대건 신부 묘소 옆에 기념성당이 건립되었다. 현재 김대건 신부의 시신은 혜화동 가톨릭 대학, 미리내 경당, 절두산 성지(切頭山 聖地)에 분리 안치되어 있다. 김대건은 한국 최초의 성직자이자 헌신적인 순교자의 상징으로 사후부터 현재까지 많은 곳에서 추모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14년에는 김대건 신부의 이름을 걸고 성직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가 대구에 세워졌는데, 이것이 곧 대건중학교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Reading · 자료와 맥락

기록을 읽는 기준

출생 정보는 기록에 확인된 정밀도로 표시합니다. 양력과 음력을 구분하고, 날짜가 완전하게 확인된 경우에만 탄생 상징을 함께 살펴봅니다.

인물 요약과 활동 기록의 출처는 각 문단 및 출처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