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음력 생일
정본 기록에 남은 음력 생일입니다.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아틱 Arctic
그래스 그린 グラスグリーン, Grass Green
생일 인물
생일 역사 인물
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본은 경주로서 최치원(崔致遠)의 후예이다.
출처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
1833년 음력 12월 5일 경기도 포천군 내북면 가채리(抱川郡 內北面 嘉·里)에서 대(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타고난 자질(資質)이 뛰어나서 초명(初名)을 기남(奇男)이라 하였다. 가세가 가난하여 4세 때 단양(丹陽)으로 옮긴 것을 비롯하여 여러 지방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1846년 14세 때 부친의 명에 따라 화서 이항노(華西 李恒老)의 문인이 되었는데 면암이라는 호는 화서에게서 받은 것이다. 23세 때 명경과(明經科)에서 갑과(甲科)로 급제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재임 중 면암은 꾸준히 부정부패와 구국항일 투쟁을 전개하여 끊임없이 탄압을 받았다.
출처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
1906년 2월 면암은 가묘(家廟)에 하직을 고하고 호남으로 떠나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하였다. 처음에 상경하여 일을 추진하고자 하였으나 일인들의 방해로 상경하지 못하였다. 다시 판서 이용원(判書 李容元)·판서 김학진(金鶴鎭)·관찰사 이도재(觀察使 李道宰)·판서 이성렬(李聖烈)·참판 이남규(參判 李南珪)·곽종석(郭鍾錫)·전 우(田愚)에게 편지를 보내어 함께 국난을 타개할 것을 호소하였으나 모두 응하지 않았다. 이에 면암은 문하생 최제학(崔濟學)을 전 낙안군수(樂安郡守) 임병찬(林炳瓚)과 연락케하여 전라도에서 거의(擧義)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의 의병활동은 태인(泰仁)과 순창(淳昌)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출처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
그러는 동안 의병부대는 6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 때 전주의 관찰사 한진창(韓鎭昌)과 순창 군수 이건용(李建鎔)이 일병을 거느리고 습격해 왔다. 10일 새벽 면암은 임병찬에게 명하여 접전케 하였으나 길이 어긋나 교전은 없었다. 얼마 후 순창 군수가 면암을 찾아왔다. 면암은 그의 목을 베이고자 하였으나 임병찬의 만류로 중지하고 선봉장으로 삼았다. 그간에도 사방에서 애국 청년들이 몰려와 군사의 수는 800여명으로 늘었으나 무장을 갖춘 사람은 200여 명에 불과하였다. 11일 새벽 관찰사 이도재(李道宰)가 의병을 해산하라는 황제의 칙지(勅旨)와 고시문을 보내왔다. 면암은 기병소(起兵疏)를 올렸으니 곧 황제의 비답(批答)을 받게 될 터인즉 일개 지방관찰사가 간여할 바가 아니라는 답장을 보냈다.
출처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
서훈
정본 서훈 기록입니다.
- 대한민국장 · 1962년
출처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