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thDB · 날짜 기반 엔터테인먼트 아카이브MON · 26.11.02 · KST
BirthDB· THE DATE ARCHIVE
Section탄생상징
Page조선 세종 탄생 정보와 업적
Historical Figure

조선 세종

조선 전기국어학자유학자과학자국왕
시대조선 전기
직군국어학자 · 유학자 · 과학자 · 국왕
양력 생일1397년 5월 15일
향년52세
Birth Color
라벤더 그레이 (Lavender Gray)
#9690A3
Second Color
콜로니얼 옐로 (コロニアルイエロー, Colonial Yellow)
#D0C67C
인생 여정 수 · Life Path Number
4
삶의 큰 방향을 상징하는 수
탄생수 · Birth Number
4
그 날짜가 품은 수
Summary

인물 요약

조선의 제4대(재위: 1418년~1450년) 왕.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전문사전 학술 콘텐츠

Birth Profile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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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r

음력 생일

정본 기록에 남은 음력 생일입니다.

음력 생일4월 10일
Birth Symbols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Celestial

하늘

별자리황소자리
별자리 주간황소자리Ⅲ: 자연스러움의 주간
탄생성금성
탄생신아프로디테
Terrestrial

땅

탄생화물망초
꽃말나를 잊지 마세요 · 진실한 사랑 · 영원한 우정
탄생목밤나무
탄생석에메랄드
Spirit

그 외

탄생주크림 드 민트 그린 프라페
탄생색 (영문판)라벤더 그레이 (Lavender Gray)
탄생색 (일어판)콜로니얼 옐로 (コロニアルイエロー, Colonial Yellow)
Signature Spectrum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BIRTHDAY PEOPLE

생일 인물

BIRTHDAY HISTORICAL FIGURES

생일 역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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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집현전 설치와 인재 양성

집현전(集賢殿)은 세종대 정치·사회적 안정과 문화적 발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기관이었다. 집현전은 원래 중국에서 연원한 것으로, ‘집현전’이 처음 등장한 것은 당(唐)나라 때이며, 송(宋)나라에서도 당의 제도를 따라 집현전을 설치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에 집현전이 처음 설치되었으며, 조선 초기 정종대에도 설치된 바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집현전은 유명무실한 기구에 그쳤으며, 명실상부한 학술 기관으로서의 집현전이 등장한 것은 세종대에 이르러서였다. 세종은 조선의 문물·제도 정비를 완성하고 성리학(性理學)에 기반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원만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재 양성과 학문 진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위한 학술 기관으로 집현전을 설립하였다. 세종대에 집현전이 설치된 것은 1420년(세종 2) 3월이다. 설치 초기 집현전은 주로 경연(經筵)과 서연(書筵)에서 국왕·세자와 함께 유가(儒家) 경전(經傳)과 역사서를 읽고 토론하는 업무를 담당하다가, 1428년(세종 10)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학술 연구 사업을 수행하였다. 집현전에서의 학술 연구는 고제(古制) 연구와 서적 편찬 사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제 연구는 조선의 상황에 맞는 유교적 의례(儀禮)·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제도를 연구하는 것으로, 예조와 의례상정소(儀禮詳定所), 집현전 등을 중심으로 연구가 추진되었다. 집현전에서 편찬된 서적은 약 40종에 달하며, 연구 분야도 유학(儒學)이나 의례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치·역사·문학·어학·군사·지리·의학·농업·천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세종은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집현전 학사로 발탁했으며, 이들이 장기간 집현전에서 학문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특전을 주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사가독서(賜暇讀書)로, 집현전 관원들에게 일정 기간 휴가를 주어 정무(政務)에서 벗어나 재충전을 하면서 학문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훈민정음의 창제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는 세종이 남긴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빛나는 업적이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처음 창제한 것은 1443년(세종 25) 12월이었다. 이후 세종은 최항(崔恒)·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이현로(李賢老)·이개(李塏)·강희안(姜希顔) 등에게 명하여 훈민정음으로 『운회(韻會)』를 번역하게 하였고 국정 운영에 관한 문서들을 훈민정음으로 작성하는 등의 여러 가지 시험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최만리(崔萬理)·김문(金汶) 등이 새 문자의 창제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세종은 이러한 반대를 물리치고 더욱 적극적으로 훈민정음의 반포를 주도해 나갔다. 그리고 1446년(세종 28) 9월 29일, 마침내 훈민정음의 완성을 공식 반포하였다. 훈민정음은 새로운 문자를 만든 목적과 각 문자의 의미 등을 상세히 설명한 해례(解例)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훈민정음 반포 이후 세종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거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훈민정음으로 해설을 달아 반포하는 등 훈민정음 보급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또, 『동국정운(東國正韻)』·『홍무정운역해(洪武正韻譯解)』 등을 편찬하여 훈민정음으로 한자의 정확한 발음을 정리하는 작업도 추진하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예악(禮樂)과 법제(法制)의 정비

성리학의 사상적 기반 위에서 건립된 조선은 유교적 예악정치(禮樂政治)의 실현을 추구하였다. 여기에서 ‘예(禮)’는 사회적 질서를 의미하고 ‘악(樂)’은 조화를 의미한다. 즉,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맞는 분수와 질서를 지키면서 살지만 그 가운데 상하 간의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예와 악의 정신이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의례와 음악의 정비가 필요하다. 따라서 유교 정치의 실현을 추구했던 세종대에 국가 의례와 음악의 정비가 추진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의례의 정비는 새 나라 조선의 위상에 걸맞는 의례의 제도를 확정하는 것으로 태종대 의례상정소가 설치된 이후 본격화되었고 세종대 집현전이 설치되면서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과학 기술의 발전

세종대에는 천문, 의학, 농업 등 과학 기술 분야에서도 큰 발전을 이루었던 시기였다. 먼저 천문 분야를 살펴보면, 세종은 1432년(세종 14)부터 장영실(蔣英實)·이천(李蕆) 등에게 혼천의(渾天儀)를 비롯한 각종 천문 관측 기계들을 제작하게 하여 1438년(세종 20)에 모두 완성하였다. 그리고 1434년(세종 16)에는 경복궁 안에 석축 간의대(簡儀臺)를 축조하고 이곳에 관측 기계들을 비치하여 매일 밤 천문을 관측하게 하였다. 1434년(세종 16)에는 물시계 자격루(自擊漏)가 만들어졌고, 이것을 보루각(報漏閣)에 설치하여 표준시계로 사용하였다. 또, 1441년(세종 23)에는 측우기(測雨器)가 발명되어 새로운 강우량 측정 제도가 마련되었다. 의학 분야에서 세종은 1431년(세종 13) 집현전 학사 유효통(兪孝通) 등에게 명하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이용한 처방을 연구하게 하여, 2년 만에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편찬하였다. 또, 1445년(세종 27)에는 역시 집현전에 명하여 임상적 처방을 병증에 따라서 분류·집성한 『의방유취(醫方類聚)』를 편찬하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공법(貢法) 시행과 북방 개척

세종은 민생 안정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들을 추진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법(貢法)의 시행이다. 공법 이전에는 관리가 매년 풍·흉작을 조사하여 세율을 정하는 답험손실법(踏驗損實法)을 적용했으나, 풍흉을 조사하는 답험관의 부정으로 폐해가 컸기 때문에 이를 개정한 것이다. 세종은 1436년(세종 18) 공법상정소(貢法詳定所)를 설치하였다. 공법은 토지를 비옥도에 따라 6등급, 풍흉 정도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누고 기본 세율을 1/20로 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하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불우한 가정사와 질병의 고통

이상과 같이 찬란한 업적을 남긴 세종이었지만, 세종 개인의 삶에는 많음 슬픔과 고통이 있었다. 먼저 즉위 초반 장인 심온이 처형되고 처가가 풍비박산되는 비극을 겪었다. 당시 영의정이던 심온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한 태종이 상왕의 군사권 행사에 이견을 보였던 강상인(姜尙仁) 등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그 배후로 심온을 지목하여 처형한 것이다. 태종은 세종의 왕권을 위협할 만한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조처였지만, 세종에게는 처가를 잃는 아픔이었다. 세종은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를 먼저 잃는 아픔도 겪었다. 이와 같은 세종의 질병은 그가 정치 체제를 의정부 서사제로 전환하고 세자에게 정무를 대리하도록 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Reading · 자료와 맥락

기록을 읽는 기준

출생 정보는 기록에 확인된 정밀도로 표시합니다. 양력과 음력을 구분하고, 날짜가 완전하게 확인된 경우에만 탄생 상징을 함께 살펴봅니다.

인물 요약과 활동 기록의 출처는 각 문단 및 출처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