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요약
조선의 제9대(재위: 1469년~1494년) 왕.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음력 생일
정본 기록에 남은 음력 생일입니다.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애프리콧 Apricot
아쿠아 그레이 アクアグレイ, Aqua Gray
생일 인물
생일 역사 인물
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즉위 이후의 생애와 업적
성종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당시 성종의 나이는 13세로 아직 직접 정사를 돌보이게는 무리가 있었다. 이에 따라 성종이 성년이 될 때까지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였다. 또한 성종대는 세조비인 정희왕후가 대왕대비로, 의경세자의 비인 인수대비와 예종비인 인혜대비(仁惠大妃)가 모두 생존하여, 왕실의 최고 어른이라 할 수 있는 대비가 무려 3명이나 존재하는 전무후무한 시기였다. 성종 즉위 이후 곧바로 성종의 친부였던 의경세자의 추존이 정치적 논의 대상이 되었다. 아들인 성종이 왕이 되었으니 그 친부인 의경세자도 왕으로 추존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덕종의 신위를 종묘에 안치하였다. 예종의 왕비였던 인혜대비가 성종의 친모인 인수대비보다 당시까지 서열이 위였으나, 덕종이 종묘에 안치되면서 형이었던 덕종의 비인 인수대비가 인혜대비보다 높은 서열을 차지하게 되었다. 덕종의 부묘와 대비간의 서열 재조정은 성종의 왕위가 상당히 안정되었던 실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사후의 평가와 계승
유교국가에서 ‘인’ 이란 것은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졌고 묘호 역시 인종은 가장 높은 등급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인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종의 인품과 업적이 인종이란 묘호와 부합한다고 보았다. 성종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성종이 기존 역대 선왕들의 업적을 집대성한 왕이며, 인종이란 묘호는 중국 송나라의 황제였던 인종이 있으므로 함부로 쓸 수 없는 묘호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묘호는 인수대비가 성종으로 결정하였다. 그는 현재 강남구에 위치한 선릉(宣陵)에 묻혔다. 성종은 모두 12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이중 왕비는 공혜왕후 한씨와 정현왕후 윤씨, 그리고 폐비가 된 윤씨 세 명이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