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요약
조선 중기에, 의주목사, 도원수 등을 역임한 문신.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비리디안 그린 Viridian Green
존 미엘 ジョーンミエル, Joan Miel
생일 인물
생일 역사 인물
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임진왜란 초기의 활동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에 임명되어 즉시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수도 한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방어사 곽영(郭嶸)의 중위장으로서 서울을 수복하기 위하여 북상했다. 전라도 순찰사 이광(李洸)도 대군을 이끌고 한성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이광은 권율의 조언을 듣지 않고 무리한 공격을 하다가 대패했고 권율은 광주로 돌아가서 다시 공격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귀환 후 군사들을 재결집한 권율은 다시 한성을 향해 진군했다. 그리고 동복현감 황진(黃進)과 함께 금산군에서 전주로 들어오려는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의 군대와 이치에서 싸워 승리했다. 이를 이치전투(梨峙戰鬪)라고 부른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행주산성전투
이즈음 명나라에서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였다. 권율은 추후에 있을 명군과의 한성 탈환 연합작전을 대비하여 보다 한성에 가까운 지역으로 군사를 옮기기로 하였다. 먼저 휘하에 있던 조방장 조경(趙儆)에게 명하여 적당한 곳을 찾게 하였다. 그리고 주둔지로 행주산성(幸州山城)이 선택되었다. 권율은 조경에게 명령하여 2일에 걸쳐 목책을 완성하게 한 뒤 독성산성에 소수의 병력만을 남기고 군사를 이동시켰다. 전라도 병마절도사 선거이(宣居怡)에게는 4천 명의 병력을 주어 금천산에 주둔하게 하고 자신은 2천 3백 명을 거느리고 행주산성에 들어갔다. 이것이 1593년(선조 26) 2월의 일이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도원수로서의 활동
행주산성 전투의 공으로 권율은 도원수에 임명되었다. 도원수는 국가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조선군을 총괄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주어지는 관직으로서 임진왜란이라는 위기가 닥치자 김명원이 그에 임명되었고 이 때 와서 권율로 교체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원수는 도체찰사와 직무상 겹치는 부분이 많았고 하급 장수들이 도원수의 명령에 불복하고 직속상관의 명령만을 따르려 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들이 중첩되어 권율은 1595년 10월 일시적으로 도원수에서 물러나기도 했으나 다음해 1월 다시 도원수 직에 돌아왔다. 명과 일본의 강화교섭이 결렬되고 일본군이 다시 바다를 건너올 것이 예상되자 도원수 권율은 대책마련에 힘썼다. 도원수로서 권율은 최전선에 직접 나아가 활동하면서 일본군과 대치한 조선군을 지휘했다.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