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요약
조선시대 우의정, 좌의정, 전라도체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
탄생 정보
같은 양력 월일의 탄생색과 날짜 상징을 이어서 봅니다.
음력 생일
정본 기록에 남은 음력 생일입니다.
탄생 상징
하늘·땅의 날짜 상징 정보입니다.
탄생색 스펙트럼
영문판·일어판 탄생색과 비슷한 색상의 탄생색을 스펙트럼·날짜 링크로 잇습니다.
비리디안 그린 Viridian Green
존 미엘 ジョーンミエル, Joan Miel
생일 인물
생일 역사 인물
같은 날짜·상징
현대 인물 페이지와 같이 같은 생일과 탄생 상징으로 이어 봅니다.
업적과 활동
공개된 정본 기록에서 확인한 활동입니다.
출세와 동서붕당
선조[조선](宣祖)의 즉위는 정철과 같은 젊은 선비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정철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선조 즉위 이후 32세 때 수찬이 되었으며, 실록청 낭청을 지내는 등 젊은 관료들이 역임할 수 있는 주요 관직들에 여러 차례 임명되었다. 그 밖에도 이황(李滉)에게 시를 지어 전송하고, 이이와는 사가독서를 함께 하며 성혼과도 꾸준히 시를 주고받는 등 사림과의 교유는 지속되고 있었다. 이조의 낭관으로, 관리 등용에 관여하며 사류를 등용하려 하자 김개(金鎧), 홍담(洪曇) 와 대립하는 등, 이이와 함께 사류의 선봉으로 조정에서 활동을 지속하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지속된 부침 : 동서 대립의 한 가운데 서다
비록 조헌(趙憲) 등이 상소를 올려 이이와 정철 등을 구원하고자 하였으나, 이이 사후 정국은 지속적으로 동인이 주도하고 있었다. 이때의 은거생활 역시 정철의 문학활동에 있어 중요한 시기였다. 잠시 조정에서 물러나있던 사이 정철은 자신의 충성을 강조하고자 임금을 그리는 가사를 썼는데, 그것이 바로 〈사미인곡(思美人曲)〉과 〈속미인곡(續美人曲)〉이다. 이러한 시조들은 정철 자신의 정치적인 상황을 은유하는 한편 임금을 향한 마음이 드러난, 양면적인 성격을 지니는 대표적인 가사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철의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온 것은 1589년(선조 22)의 기축옥사(己丑獄事)였다. 정철은 이 때 비밀리에 이들을 체포할 것을 아뢰었으며, 이내 우의정이 되어 옥사를 주관하는 위치에 오르게 된다. 기축옥사는 그 발단과 전개, 처리에 있어 당대에서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온 사건으로, 동인과 서인의 입장 차이에 따라 사건 자체 및 주요 인물에 대한 평이 지금도 엇갈리고 있다. 기축옥사 이후 좌의정에까지 오르며 정국을 주도하던 정철이었으나, 1591년(선조 24) 동인의 탄핵과 선조의 분노로 인해 정철은 파직을 당한 후 귀양을 가게 되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정치가 정철과 문인 정철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정철은 16세기 후반 동인과 서인의 대립의 중심에 서 있었던 정치가였다. 그는 김효원과 심의겸(沈義謙)의 대립에서 비롯된 동인과 서인의 대립의 한가운데 있었던 인물일 뿐 아니라, 기축옥사와 같이 양 붕당의 대립을 극단으로 몰아간 사건의 처리를 주도하였던 인물이었다. 이 때문에 사후에도 관직 삭탈과 신원, 추증이 반복되었던,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정치가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처리를 놓고 동인이 북인(北人)과 남인(南人)으로 나뉘는 계기까지 제공하는 등, 당대 정치적 논란은 그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